어제 난, 17대 대통령 선거기간이 되자마자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서 투표를 하고 왔다. 6시라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보다 먼저 투표를 하고 나오시는 어르신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5년을 이끌어줄 대통령을 뽑기위해 일찍 집을 나선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맡으니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만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조금 씁쓸했다. 내가 선택한 후보가 이미 대통령이 되기엔 너무나 낮은 위치에 서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술자리를 했었다. 서로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지만 우리들의 주 술안주가 되어주었던건 역시 "누가 대통령 될 것이냐"였고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각기 서로 다른 후보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역시나... 논쟁의 결말로 대통령이 될 사람은 지금 당선자가 되신 한 명으로 모아졌다.
사실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였을 것이다.
이번 대선 역시 이전 대선과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16대 대선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출현에 놀라워 했었다면 이번 선거는 기존 미디어들이 예전히 강력하고 힘을 잃지 않았음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대선 때 난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인터넷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진 못한다. 들리는 무용담에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3개 방송사와 주요 3개 언론사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책상 위에서 후보들을 선정하고 그 후보를 밀어주기 위해 적절히 입맛에 맞는 자료들을 연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선거기간내내 노골적으로 단 3명의 후보들만을 보여주었고 다른 후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검증, 심판받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기존 세력에서 제외)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그리고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오랫동안 정계를 이끌어왔던 세력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미디어들로부터 한순간에 왕따를 당했다. 그들만의 리그를 방해하는 떨거지들로 전락시키고만 것이다. 그리고 대선결과로 나타난 득표율만이 그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내가 선택했던 후보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시기가 너무 늦은 이유도 있었지만 미디어들을 통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아쉽게 되었지만 앞으로 더욱 인정받고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미디어는 언제나 개혁을 바라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갈 인물이 필요하다고 입으로는 절실한 것처럼 말하지만 늘 소극적인 자세로 그 나물에 그 밥속에서 조금 다른 인물을 찾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수언론이라 말하며 질타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각 후보들이 미디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용했는지가 이번 대선결과를 갈라놓았다. 한나라당에서는 대선이 끝났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을 블도저라는 대선후보의 별명답게 일관되게 정면돌파했고 대통합신당은 비열하게 느껴질만큼 이리저리 상대후보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 덕분에 정책없는 선거였고 해외언론으로부터 더러운 선거였다고 비난까지 받았다. 여당의 정동영 후보가 언론인 출신이고 미디어를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컨트롤할거라 생각했겠지만 어리석게도 악용하고 말았다. (사실, 난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감은 아니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고 기껏해야 장관정도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체급차를 확실히 확인했다.)
몇 해 전, 영화배우 황정민씨가 시상식 소감으로 스태프들이 잘 차려준 밥상을 자신은 맛있게 먹기만 했다고 밝혔었는데 이번 대선의 승자 역시 미디어들이 차려준 밥상을 스스로 잘 비벼먹은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결과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주요언론기관들이 참여정부로부터 얻은 불신과 그로 인해 서로간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현정부에 등을 돌린 탓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이전 정부들보다 언론에 많은 자유를 주었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를 한층 더 실현했다고 평가했지만 그 이면에는 언론과의 끊임없는 힘겨루기가 있었고 한 번도 조화되지 못했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언론들은 앞다투어 한나라당의 대선압승요인을 현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처절한 심판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결과는 이미 나버렸다. 잘못된 결과가 나왔든 잘된 결과를 내놓았든 앞으로 대한민국이 좋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화풀이식이 아닌 국민들이 늘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알게끔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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